상인의 딸
3년 동안 시장에서 살았다. 식당 2층에 딸린 1.5룸이었다. 회사 출근을 위해 아홉 시에 집을 나서면 시장은 이미 깨어난 지 오래였다. 우리 집 바로 옆 국밥집 앞에는 이미 손질을 마친 우거지와 소뼈가 쌓여 있었다. 장사 준비를 마친 할머니는 티비 앞에 앉아 아침 드라마를 보고, 깡마른 할아버지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배를 벅벅 피고 계셨다.
상인들의 부지런함에 둘러싸여 출근할 때면 나의 게으름이 부끄러웠다. 그들은 나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우스갯소리로 ‘회사 때려 치고 식당이나 할까’라고 내뱉던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저들만치 부지런할 자신이 없으면 그런 말 따위 입에도 올리지 않는 것이 맞다. 우리가 사 먹는 밥은 사실 상인의 아침이다.
나도 한때 상인의 딸이었던 적이 있다. 연년생 자매를 갖게 된 나의 부모는 잠시 포장마차를 했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부업이었을 것이다. 장사가 잘되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나의 엄마 희의 전매특허 멸치 떡볶이의 건강한 맛을 떠올리며 자극적인 입맛의 손님은 별로 없었을 거라 상상해 볼 뿐이다.
희와 덕은 포장마차로 큰 재미를 보진 못했지만, 돌연 부대찌개 식당을 시작하게 된다. 십중팔구 덕이의 사업 병 때문이었으리라. 장사를 하자고 한 건 덕인데, 가게를 지키고 있는 건 희였다.
나는 그때도 목도하였다 상인의 부지런함을. 희는 매일 밤 고기를 두드렸다. 찌개집이었지만 아이 동반 손님을 위한 돈가스 메뉴가 있었기 때문이다. 등심을 망치로 때려 왕돈까스만큼 얇고 넓게 만들고, 큼지막한 스테인레스 냄비에 토마토를 넣고 끓여 소스를 만들었다. 모든 걸 직접 해야 맛이 좋고 무엇보다 재료비를 아낄 수 있었다.
탁탁- 고기를 두드리는 소리는 동화책을 읽을 때 상상했던 아낙네들의 강가 빨래 소리와 유사했다. 둔탁하면서 동시에 맑은소리가 가게를 가득 메웠다.
돈까스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까. 직접 만들어 녹진하고 달큰한 소스에 고소한 튀김옷을 입은 돈까스는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하지만 돈까스 한 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큼의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기에 나는 함부로 ‘돈까스 먹을래’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보다 495일을 덜 산 동생은 눈치도 없이 덥석덥석 계속 엄마표 돈까스를 찾았다.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희에게는 잠잘 시간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희는 직장 생활의 탈출구로 창업을 상상하며 하소연하는 내게 늘 훈수를 둔다.
“장사가 어디 쉬운 줄 아니. 특히 음식 장사는 사람들 입맛 맞추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야. 같은 음식인데도 누구는 맛있다고 하고 또 누구는 짜다고 해. 특히 음식 장사는 진짜 어려워.”
희는 상인을 그만둔 지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도 자주 들어서 레파토리를 외울 정도다. 이따금 희가 담근 겉절이가 너무 맛있어서 이건 진짜 팔아야 한다며 너스레 떠는 딸의 칭찬에도 짐짓 진지하게 충고한다.
“씁. 음식 장사 아무나 못 한다.”
아마 상인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부지런함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잔인함을. 언제나 새로운 손님 앞에 초면이 되는 잔인함을. 공들인 시간이 주관적 기준에 의해 무너지는 잔인함을.
회사 돈이나, 남의 돈이나.
이러나저러나 돈 벌어먹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2025年 3月 3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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