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택시
택시를 탈 때마다 맘속으로 기도한다. 제발, 평범한 기사님이 걸리길. 택시를 자주 타는 편도 아닌데 아주 높은 확률로 불쾌한 경험을 한다.
우리 집 여자 셋이 함께 택시에 탈 때면 백이면 백 무례함을 경험했다.
“ㅇㅇ초등학교 앞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면,
“내가 ㅇㅇ초라고만 하면 어떻게 알아요”라며 성질을 내며 대꾸하는 식이다.
탑승지에서 도착지까지 불과 2km 거리였다. 내비게이션은 장식인가.
비슷한 일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젠 택시에 타자마자 표정을 지우는 게 습관이 되었다. 최대한 감정 없이 단답형으로 말하며 강해 보이려고 애쓴다. 나와 가족을 지키려는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최악의 택시 경험이 갱신됐다. 회사 동료의 집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정신은 멀쩡했고 그저 낡고 지친 상태였다. 앱으로 부른 택시가 도착해 뒷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내비대로 갈게요”라는 기사의 말에 나는 “네” 하고 대답한 다음 바로 눕듯이 편하게 몸을 기댔다.
그러자 할아버지뻘의 기사는 대뜸 내게 말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예쁘네”
절대 기분 좋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냥 ‘오늘 진상 손님을 많이 만나셨나 보다’ 하고 넘기며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경 어디서 샀어요? 나도 안경 바꿔야 하는데 안경 예쁘네”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끗대던 그가 말했다. 마침 내가 제일 아끼는 동그란 은색 빈티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 안경의 멋짐을 알아보다니, ‘뭘 좀 아는 분이군’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가진 정보를 털어놨다.
“이런 안경 동묘나 황학동 시장 가면 많아요. 디자인도 다양하고 가격도 되게 저렴해요.”
늘 얼굴 절반을 가리는 잠자리 안경을 쓰던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우리 할아버지뻘의 그가 안경점에 가서 호갱 당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매장 위치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예쁜 안경을 저렴하게 맞출 수 있는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를 말하고 있었는데, 왜인지 택시 기사는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열심히 듣지 않으면 그의 손해라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신호에 걸려 운행을 멈춘 그는 갑자기 앞 좌석 라이트를 켜더니 백미러가 아닌 직접 고개를 돌려 내 쪽을 흘깃댔다. 안경을 요리조리 구경하는 것 같다가 갑자기 뒷좌석 조명을 켰다. 내 정수리 위 불이 환히 켜진 순간, 그가 대단한 호의라도 되는 양 말했다.
“얼굴도 예쁘네”
뒷좌석에서 편하게 앉아서 가다가 갑자기 그가 켠 하얀 조명 아래 서게 된 나는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에 얼어버렸다. 뭐라고 대답하기도 싫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택시기사는 다시 한번 덧붙였다.
“못 들었나? 방금 예쁘다고 했는데”
“아…”를 내뱉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내리고 싶었다.
다음날 출근하면서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를 날렸다. 택시 앱에서 별점 1개를 주고 ‘다시 만나지 않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불편 사항에 한 문장을 남겼다. “갑자기 승객 자리의 불을 켜는 행위는 매우 불쾌했습니다.” 그가 알아먹길 바라며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왠지 머릿속에 이런 장면이 그려졌다.
“웬 아가씨한테 예쁘다고 했는데 글쎄 별점 테러당했잖아~
예쁘다고도 못하는 세상이야. 진짜 무섭다니까~”
라고 다른 여성 승객에게 하소연하는 기사의 모습이.
7월의 습한 날씨를 뚫고 소름이 돋아났다.
아주 또렷하고 생생하게.
(2025年 8月 4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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