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이 긴 추석 연휴였다. 올해만큼 긴 추석은 19년 후에나 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소중한 휴가가 끝나가는 마당에 예찬하는 글이라도 써야 마음이 편하겠다.
참고로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흘렀다.
10월3일(금)-4일(토) 할머니와 세 모녀의 함양 여행
10월 4일(토)-5일(일) 할아버지 첫 제사 음식 준비. 진주 중앙시장 방문 및 주방 보조 자처.
10월 6일(월) 제사 후 엄마와 할머니간 캐주얼한 불화로 집을 박차고 나온 세 모녀, 고속도로 정체를 피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및 유등축제 관람 후 새벽에 서울 귀성.
10월 7일(화)-8일(수) 흐드러진 낮잠을 자고, 집밥 충전. 그리고 엄마와 빵을 먹으며 단지 사고였을 뿐 관람
10월 9일(목)-12일(일) 서울로 돌아와 나는 솔로 돌싱 특집 본방 사수, 오전 러닝 1회 및 관악산 둘레길 트래킹, 카를로와 야채곱창, 짜파구리, 허니콤보, 한강라면, 불닭볶음면, 참치김밥 흡입.
- 영상: 크라임씬제로, 저스트메이크업, 어쩔 수가 없다, 원배틀애프터어나더, 단지 사고였을 뿐, 김씨 표류기, 나는 솔로
- 책: 경제사상가 이건희,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리스본행 야간 열차
- 음식: 교촌 허니콤보, 요거트 아이스크림+초코쉘, 샤인머스켓, 불닭볶음면, 열라면, 짜파구리, 땅콩비빔면, 소곱창 전골, 할매국수, 포케, 이금기 굴라면 컵라면, 스초생, 야채곱창+알곱창, 순대국, 맥주, 막걸리, 소주, 소맥, 생레몬 하이볼. 그리고 장어국, 갈비, 연근 오징어 고구마 튀김, 정구지 지짐 외 다수.
할머니 댁 가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기에, 가장 편하고 값싸게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콘텐츠와 음식에 빠져들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다며 12시에 잠들고 6시에 깼으나, 빈속에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 한 숟갈씩을 먹고 아침식사를 한 다음, 다시 8시부터 10시까지 잤다. 일찍 일어나 막상 할 게 없으니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챙겨 먹는 사치를 부렸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도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히 남았는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했다. 하루정도는 생산성있는 일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금방 소실되었다. 소파에 누워서 태블릿 피시를 들고 메이크업 서바이벌과 추리 예능을 봤다. 한껏 늘어진 자세와 게으른 마음가짐을 하고서는 독기있게 촬영에 임하는 연예인들을 시청했다.
머릿속에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데, 동시에 누워있기를 멈출 수 없었다.
손가락은 계속 인스타 피드를 스크롤링했다. 피드 속 사람들은 제각각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내가 한가로이 권태로움을 느끼며 어떻게 살지 우왕좌왕하고 있는 찰나 이들은 나를 휑 지나칠 것이 뻔하다. 다시 한번 도태되는 허탈감을 느끼며 눈에 보이는 대로 간식을 주워 먹고 줄거리가 이해되지 않는 영상물을 틀어놓고 멍을 때렸다.
하여튼 맘에 안 드는 연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