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완전히 다른 삶의 궤적을 살던 사람들과 운명적으로 잠시 겹치는 순간이 있다. 나의 경우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할 때가 그러했다.
월령리 선인장 마을의 작은 게하에서 의식주를 제공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스태프로 지냈는데, 매일 왕복하던 삶의 반경을 벗어나자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온 친구들이 참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한 친구 경남을 벗어난 적 없는 친구 몸이 약해서 매일 빠지지 않고 운동하는 친구 바리스타를 준비하는 친구 임용고시 공부하는 친구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쉬러 온 친구. 거기서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나 한 명이었다. 육지에서는 당연했던 삶의 궤적이 실은 더 다양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저녁에 함께 모여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나누었는데 그때만큼은 서로를 식구로 여겼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니 그때 그렇게 가까웠던 인연들이 모두 신기루 같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우리가 겹쳤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해 보니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들의 소식은 의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종종 알고리즘이 친구들의 소식을 알려준다. 추천 콘텐츠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여 클릭해 보면 제주도 식구들인 것이다. 인플루언서가 된 친구도 있고 대박 로컬 가게의 사장이 된 멋진 친구도 있다. 반가움에 고민 없이 연락하기엔 먼 사이가 되었지만, 잠시라도 식구처럼 살았던 기억은 강해서 아직도 가깝게 느껴진다. 나도 이 친구들처럼 멋진 근황으로 놀래켜주고 싶은데 나에겐 회사 다닌다는 점 말고는 특별할 게 없다.
뜬금없이 나는 솔로에 나가는 상상을 한다. (사실 솔로지옥 빼고는 다 상상해 봤다.) 예전엔 연애 프로에 나가서 인플루언서로 성공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종종 했지만, 삼십 년 가까이 나 자신과 살아보니 이제 그런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내가 어떤 포지션일지 분명히 보인다.
첫째, 말을 실수로 옮겼다가 파국을 일으키는 출연진.
둘째, 남자 출연진들에게 인기가 없을 뿐 아니라 여자 출연진들과도 겉도는 사람.
셋째, 첫 회에 자기 소개할 때 잠깐 나왔다가 뒤로 갈수록 분량이 거의 사라지는 사람.
서른, 나 자신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는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