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과 설탕
새해를 맞아 책장을 정리했다. 내 방 한쪽 면을 차지하는 이 미터짜리 체리색 책장이다. 고모에게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았던 것이니 벌써 20년 넘게 나를 담아준 기특한 녀석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의 내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그야말로 이솔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열 페이지도 채 쓰지 못한 일기장
무리한 계획으로 꽉 찬 스케줄러
지금은 손절한 옛 친구에게 받은 생일 축하 편지
수업 시간에 몰래 한 낙서가 가득한 교과서
친구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혼자 썼다가 막상 보내지는 못한 쪽지
피아노 콩쿠르 나간다고 너덜해질 때까지 연습했던 악보
‘남자 친구 최소 10명 사귀기’라고 적은 버킷리스트
사모했던 보이 그룹의 앨범
스프링 노트에 연재했던 인터넷 소설
매일 책상 밑에 들어가 읽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
책장 속에는 이루지 못한 꿈과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 잔뜩 고여 있었다.
그놈의 작가라는 꿈은 근 20년째 꿈만 꾸고 있구나. 주기적으로 운동하겠다는 다짐은 중학생 때부터 해왔지만, 여전히 결심만 할 뿐이다. 나는 늘 비슷한 것들을 바라왔는데, 정작 스스로는 철저히 외면해 왔다. 주인 잃은 꿈과 약속들 이제는 정말 이뤄줄 때가 되었다.
책장에는 절반도 못 쓴 노트가 한가득이었다. 주로 연도가 바뀌는 바람에 버려진 일기장들이었다. 일기장은 예쁜 표지와 두꺼운 내지라는 두 기준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신중하게 골랐다. 그런데 막상 일기는 열흘도 채 쓰지 않았다. 예쁜 노트인 만큼 정갈한 글씨로 정제된 내용을 써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결국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홀랑 새로운 일기장으로 갈아탔다. 중요한 건 일기장이 아니라 일기 자체인데 참으로 무지몽매한 초딩이 아닐 수 없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 혹은 나의 후손이 심심할 때 읽기 쉽도록 클리어 화일에 장롱 속 엑기스만 추출하여 보관하기로 했다. 절반도 쓰지 못한 일기장은 일기가 있는 페이지만 과감히 북 찢어 화일에 꽂았다.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은 두꺼운 졸업 앨범도 내 사진만 오려내고 버렸다. 교과서에서는 진짜 귀여운 낙서만 몇 개 찢어 스크랩했다. 그리고 다독상이나 친절상처럼 눈에 띄지 않는 학생에게 뭐라도 주기 위해서 의례적으로 챙겨준 상은 모조리 버렸다. 특별한 상만 화일에 꽂았다.
클리어 화일 한 권이 마치 아코디언처럼 부풀었다.
사실 책장 정리를 시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좁은 방을 견디지 못한 스물두 살 때도 정리를 시도한 적 있다. 다만 그땐 전부 추억이라며 끌어안고 지켰다.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은 아무리 좋은 추억이라도 다시 보지 않으면 의미 없다는 걸 안다. 매년 쌓이는 거라곤 추억밖에 없으니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아마 삼십 대가 된 나는 이 화일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사십 대가 되면 아예 버려 버릴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감에 취사선택에 능해지는 것 같다.
책장 정리를 마친 뒤 별안간 엄마와 가벼운 다툼을 벌인 다음, 밤 열한 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 막차에 몸을 실었다. 버스 창문을 통해 땅에 닿자마자 녹아 버리는 싸리눈을 보다가 문득 인생이 마치 뜨거운 물에 탄 설탕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한 물에 넣는 순간 자취를 감추는 설탕 알갱이처럼 시간은 온데없이 사라진다. 다시 건질 수도 없다. 그저 녹을 수밖에 없는 운명.
어쩌면 지구는 커다란 종이컵이고 인생은 뜨거운 물이며 인간은 서로 엉겨 붙은 설탕 덩어리이려나. 사실 모두 엉겨 붙어 있는 하나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싸우고 경쟁하고 증오하고 사랑하다가 뜨거운 물을 만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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