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는 어른
어른이 됐다는 것이 실감 나는 모멘트들을 종종 만난다.
가장 최근 ’나 진짜 어른 같았다’고 느낀 건 속을 게워 낼 때였다. 분출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화장실에 가서 내뱉을 때, 따끔한 목구멍과 함께 뿌듯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어릴 때는 그 낌새를 몰라 애 먹은 적 있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이던 나의 어머니 송여사는 종종 초등학생이던 두 딸을 번화가로 데리고 나가서 새로운 음식을 맛 보여줬다. 캘리포니아롤, 햄버거, 베트남 쌀국수 따위의 집에서 하기 힘든 음식이 단골 메뉴였다. 맛에 대한 설렘도 있었지만, 그런 메뉴를 파는 식당은 대학생과 커플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송여사가 누리지 못한 청춘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날의 도착지는 노원역에 새로 생긴 뷔페였다. 언니 오빠라고 부르는 게 맞을 정도로 어린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영어로 된 식당 이름은 잊어 버렸지만, 최신 유행 장소에 온 것 같다는 들뜬 마음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이것저것 먹었다. 많이 먹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위 용량이 초과한 기분이 들었다. 이 느낌을 송여사에게 공유했으나,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송여사는 다정한 목소리로 ‘키위를 먹으면 소화돼서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 말을 참 잘 들었던 나는 얼른 키위를 한 접시 가져와서 와구와구 먹어댔다. 키위가 까스활명수라도 되는 양 막 집어 먹었다. 토끼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냥 순간 와악-! 책상 위에 초록 토를 해버렸다.
경악하는 서버 언니의 표정… 열심히 책상을 닦던 어머니의 손놀림…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데 걱정하는 주변 눈빛 때문에 숨지도 못하는 나…
모든 것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나는 이제 엄마 말고 광고주가 사주는 밥도 먹는 직장인이 되었다. 와인을 잘 아는 높으신 분 덕분에 평생 내 돈 주고는 먹을 리 없을 값비싼 와인과 고오급 스페인 음식을 먹을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나는 와인보다는 소주파다. 와인 특유의 뭉근하게 취하는 기분이 싫다. 소주처럼 직관적으로 취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만 원짜리와 오만 원짜리 와인의 맛 차이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줏대 있는 소주파는 아니기에, 한 병에 몇십만 원짜리 와인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음 이게 그 비싸다는 와인이군. 맛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싸니 왠지 건강에도 좋을 것 같고(혈액순환을 돕지 않을까?), 이 순간이 아니면 평생 마실 일 없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단 한 잔도 거절하지 않고 세 시간 내내 연신 들이켰다.
‘비싼 술이라 취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2차 주종은 소주였다. 이모네라는 포장마차였다. 미지근한 취기라 호기롭게 시원한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는데, 목젖에 술이 닿자마자 토끼(🐰)가 올랐다.
순간 뭣 됐다...는 생각이 들어 광고주가 멘트 중임에도 엉덩이를 뗐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보통의 포차 술집이 그러하듯 여자 남자 공용 화장실이었는데, 내가 화장실을 점유한 지 1분이 지나자 가차 없이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양심상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30초 뒤, 포도 파티가 열렸다.
비싼 와인,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 확인도 하기 전에 다 뱉어버렸다.
뒷정리를 싹 하고, 수돗물로 가글을 한 뒤 입가를 닦고 다시 회식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프로니까!)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상급자의 말에 리액션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어른 뽕이 올랐다.
‘다 컸다 이솔, 키위 토를 하던 어린 나는 이제 없어.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 와인토를 하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구나…’
비워낼 때를 알고 가는 어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별게 다 어른이다 싶지만, 맞다. 어른 진짜 별거 아니다.
그저 속 비울 타이밍을 아는 사람일지도.
(2025年 3月 2日)
Ps.
저는 3월 2일만 되면 묘하게 붕 뜨는 것 같아요.
늘 새 학기 개학이 3월 2일이었잖아요?
드디어 2025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즐거운 봄날 보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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