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근깨
내 얼굴에는 주근깨가 많다. 깨라고 하기엔 좀 크고, 기미라고 하기엔 좀 작은 갈색 점들이 콧잔등부터 시작해 양 볼과 광대에 총총히 박혀있다. 나만큼이나 주근깨가 많은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속상해하신다.
"엄마가 돈 줄 테니까 피부과 가라. 응?”
증명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가면 사장님은 묻지도 않고 포토샵으로 쓱쓱 주근깨를 지워주신다. 주근깨가 있는 피부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듯이 나의 의사는 확인하지도 않고 지워버린다. 클릭 몇 번에 내 얼굴은 참깨 없는 햄버거 빵이 되어 버린다.
잠시 ‘내 주근깨가 그렇게 보기 싫은가’ 싶어 피부과에 갈까 고민하지만, 절대 가지는 않는다. 돈 때문은 아니다. 햇빛을 맞아 생긴 주근깨는 내가 행복했던 순간의 기록이다. 마치 의미있는 문구를 새긴 문신처럼, 피부에 박힌 주근깨 한 알에는 햇살 아래 빛났던 순간 하나씩이 담겨있다.
주근깨 하나,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던 순간
주근깨 둘, 살이 따갑도록 바닷물에서 수영했던 순간
주근깨 셋, 치앙마이 카페에서 하릴 없이 앉아있던 순간.
주근깨 넷,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 하나 들고 더운 줄도 모르고 동묘를 돌아다녔던 순간.
주근깨 다섯,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진양호 동물원에 갔던 순간
얼굴 가득 주근깨는 ‘내가 한때 찬란한 햇빛 아래서 행복했다’는 일종의 목격자다. 지우고 싶지 않다.
직장인이 된 지금은 건강검진만 하면 비타민 D 부족이 뜬다. 의사는 의례적인 말투로 햇빛 좀 많이 받으라고 권고한다. 말이 쉽지. 해가 뜨기 전에 출근했다가 해가 지면 퇴근하는 인생이다. 검진을 마친 내 손에는 비타민 D가 적힌 처방전이 있다. 8천 원짜리 비타민 D 보충제가 담긴 봉다리를 덜렁거리며 생각한다. 주근깨가 몇 개라도 더 생겨도 상관없으니 햇빛 아래 서고 싶다고, 용감히 뙤약볕 아래로 뛰어들어 새로운 주근깨를 만들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