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차림
“가난은 겨울 외투에서 티가 난다.”
“가난은 머릿결에서 티가 난다.”
“가난은 구두에서 티가 난다."
가난을 찾아 내려 혈안인 세상을 살고 있다.
샤넬 디올 루이비통정도만 알던 내가 보테가 베네타까지 알게 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다. 팀과 함께하는 점심에서 대리님이 ‘애인에게 줄 선물로 보테가 지갑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처음 듣는 이름에 나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검색해 보았다. 생소했던 이름은 소위 명품 브랜드였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나보다 생활 수준이 나은 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알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다. 명품이 아님에도 명품만큼 비싼 브랜드는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예쁘다고 생각한 이십만 원대 디자이너 브랜드 가방이 사실은 모 명품 브랜드의 유사품이었다는 사실을. 회사 동료가 편하게 입던 무지 맨투맨에 은은하게 아미 로고가 양각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아도 많은 정보가 내게 들어왔다.
나는 본래 치장에 서툴다. 초등학생 때 친구 어머니가 나를 불러 세워 바지 안으로 내복을 싹싹 넣어주신 적이 있는데, 그러니까 나는 내복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할뿐더러, 알았더라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 정도로 무딘 내게, 직장인이 되면서 시작된 공적인 옷 입기는 종종 곤란으로 다가왔다.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가게 되어 까만 재킷 하나 사서 입고 갔다. 신부 입장을 보며 손뼉을 치는데 팀장님이 내 어깨를 강하게 매만지셨다. 알고 보니 재킷의 오른쪽 어깨 뽕이 접혀 있었고 그걸 본 팀장님이 말없이 펴 주신 것이었다. 첫 결혼식 참석이라 여러 번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다듬었으나 알아채지 못했다.
장례식장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까만 옷에 먼지를 제거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쫙쫙 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단정함으로 꾸몄다. 그런데 함께 방문한 상사분이 조용히 물었다. ‘머리끈 빌려줄까요?’ 뒷머리가 뻗쳐 있었던 것이다. 감사한 맘으로 빌려서 묶으려 했으나 알고 보니 그분은 여분의 머리끈이 없었다. 뻗친 머리를 죄송해하는 마음으로 조문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엔 이제 대리도 됐겠다, 어른스러운 가방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갔다. 그동안은 광고주 미팅에 갈 때면 회사 로고가 박힌 질긴 종이 가방을 들고 다녔다. 포인터나 충전기 같은 물품을 챙기느라 종이 가방이 편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이 유니클로의 카키색 크로스 백이었기 때문에 비즈니스 미팅에는 맞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디자이너 브랜드 가방은 가격대가 3만 원부터 50만 원대까지 대중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한참의 사투 끝에 맘에 드는 비건 레더 가방을 사려고 했으나, 모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 유사품이라 해서 그냥 마음을 접었다. 명품을 아는 사람들에겐 다 짝퉁으로 보일 것 같아 그냥 깔끔한 까만색 에코백이나 들고 다니자고 마음을 돌렸다.
옷차림에서 가난한 티가 나지 않을까. 몹시 경계하며 옷매무새를 신경 썼지만 별수 없었다.
나는 가난하고 서툴렀기에 가난하고 서툰 티가 났다.
(2025年 4月 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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