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싫은 사람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산다. 본래 남을 쉽게 판단하고 미워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늘 성급하게 ‘저 사람은 어떻다’라고 라벨을 붙인 다음 마음의 냉장고 구석탱이에 처박아 두고 외면했다. 그러나 썩은 마음을 지니고 있자니 나만 손해였다.
비록 나에게 나쁘게 굴었을지라도 다른 이에겐 좋은 사람일 수 있다. 아마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희대의 나쁜 놈일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을 대할 때면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미디어학부를 복수전공할 때, 여론과 미디어라는 전공 수업을 들으며 ‘여론조사에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와 더불어 ‘인간이 아주 작은 단편만으로도 얼마나 쉽게 판단하는 동물인지’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위한 근거들은 모두 다 인식에 의한 부산물일 뿐 완벽한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나에게는 누군가를 미워할 자격도 싫어할 자격도 없다.
이렇게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아무리 생각해도,
치가 떨리게 싫은 딱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보행자가 있는데 머리를 들이미는 운전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지날 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차들이 있다. 심지어 보행자를 향해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 넓은 길을 인간과 차가 나눠 쓰고 있다는 걸 까먹었는지 보행자를 불청객 취급한다.
무리하게 들어오는 차가 있다면 나도 무리하게 횡단보도를 건넌다. 적어도 횡단보도만큼은 사람이 먼저니까 힘차게 횡단보도를 건넌다. 다행히 아직 치인 적은 없다.
둘째, 아무 데서나 손톱 깎는 사람
종종 회사 사무실이나 화장실에서 손톱을 깎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깎는 것이니 괜찮다. 손톱이 길어 키보드 타이핑이 어렵다거나 위생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상치 못한 곳에서 손톱을 깎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버스에서, 심지어 카페에 앉아서 손톱 깎는 사람을 목도하였을 때의 경악스러움을 잊을 수 없다.
옛날에 손톱 잡아먹은 쥐가 인간이 된다는 동화가 사실 비위가 상해서 만든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셋째, 아무 데나 침 뱉는 사람
담배를 태운 다음 꽁초를 버리고 거기다가 침까지 뱉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할 때 아침 일과 중 하나가 인도에 떨어진 꽁초를 줍는 일이었는데 그 외진 시골에서도 꽁초는 매일 한가득 업데이트됐다.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것도 싫은데 끈덕한 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굳이 뱉어야 한다면 하수구에 뱉길. 아니, 차라리 휴지를 가지고 다니길. (제발)
넷째, 한 치의 자기 의심이 없는 사람
자기 잘못은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하며 상대의 잘못만을 떳떳한 태도로 꼬집는 사람. 예를 들어 상대가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상대의 이해력을 탓하는 사람, 같이 잘못한 걸 상대 탓만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냥 입을 열어 단어를 뱉을 의지 자체를 상실한다. 말다툼할 전의까지 잃는다. 그저 서서히 멀어지기를 시전한다.
한 톨의 미움 없이 살고 싶지만 언제나 변수가 발생한다. 그럴 땐 마음의 냉장고 문을 느슨히 열어놓고 너무 오래 품지 않으려고 한다. 썩기 전에 버릴 수 있도록.
(2025年 4月 1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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