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 블랙
지하철을 타면 정수리의 향연을 마주한다.
나는 매일 아침 고속터미널역에서 3호선 환승을 위해 각종 사람들로 꽉 찬 역사를 걷는데, 161센티미터의 크지 않은 키임에도 꽤 많은 이들의 머리통을 내려다볼 수 있다. 가장 많은 건 흑갈색 모발. 그다음으로는 각양각색의 염색모나 새치모가 보인다. 의외로 민머리는 무척 레어하다.
머리 손질에는 성격이 담긴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 모양을 구경하는 건 은근히 재미있는 일이다. 넘실대는 머리통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걷다 보면 가끔 비현실적으로 새카만 머리를 만난다. 십중팔구 가발인 머리를.
블루 블랙을 넘어 퍼플 블랙에 가까운 가발을 쓴 아저씨를 보면, 저항 없이 나의 아빠, 덕이 생각난다. 그도 말년에 머리가 빠져서 실망이 컸더랬다. 그는 열심히 검은콩을 먹고 적외선 치료기를 사용해서 잔디 같은 터럭들을 길러냈다. 그리고 에센스까지 발라 가며 그 터럭들을 모히칸마냥 세우고 다녔다. (그 머리카락은 아기 정수리만큼 부드러웠다) 생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센 척하던 아빠를 둬서 그런가, 그 중년 남성들의 약한 모습을 목도할 때면 주체할 수 없이 슬퍼져 버린다.
사람은 원래 반대로 행동한다.
강해 보이려 할수록 실은 약한 사람이고, 외롭지 않다고 자신할수록 쉽게 외로워지는 사람이다. 퍼플 블랙 가발 뒤에 숨겨진 연약함을 상상하며 덕의 약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을 연민하는 것은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아는 영역 안에서만 슬퍼할 수 있다.
내 울타리 안에서는 슬픈 일이었을 뿐이다. 그뿐이다.
(2025年 4月 27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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