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따박따박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되었어도 미용실에 갈 때만큼은 큰맘을 먹게 된다. 요즘 서울은 커트가 기본 이만오천 원이다. 특히 여자들은 파마 한 번 하려면 최소 십만 원부터 생각해야 한다. 기장에 따른 추가 금액과 머릿결 상태에 따른 영양 추가금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슬프게도 나는 주기적인 매직 시술이 필요한 터럭을 가졌다. 숱 많은 반곱슬에 물을 튕겨낼 정도로 자기주장이 센 발수성 모발 소유자이기 때문에, 혼자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한 나이부터 저렴한 가격의 매직 시술소를 찾아다녔다. 머리를 구불구불 마는 펌이야 잘 나오고 못 나오고가 명확하지만, 매직은 쫙 펴지기만 하면 되기에 이훈 30000 처럼 저렴한 미용실에 간다고 해도 실패 확률이 낮다. 때문에 늘 가격을 최우선 순위로 두며 매직 시술을 받았다.
어릴 땐 일 년에 최소 한 번 매직을 받으며 관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냅다 묶어 버리거나 고데기로 뻗친 부분만 피고 다니게 되었다. 아무래도 시간과 돈이 문제였다.
그러다 이번 주 토요일 정말 오랜만에 매직을 받으러 미용실을 찾았다. 해외여행에 가게 되면서 괜스레 멋을 내고 싶어진 까닭이다. 동네 미용실을 수소문해 첫 방문자에 한해 기장 추가 없이 단돈 7만 원에 매직을 해준다는 집을 찾았다.
주말 시간은 금이니까 아침 11시로 예약했다. 보통 할인 시술을 예약하면 연차가 낮은 디자이너가 맡거나, 아님 여러 디자이너가 돌아가며 시술한다. 그런데 웬걸 원장 디자이너가 배정됐다.
보라색 가운을 입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미용실 의자에 앉자마자, 내가 왜 주기적인 매직 시술을 포기했는지 반사적으로 기억났다.
“와 숱이 정말 많으시네요”
“보통 사람의 두 배 정도 되시는 것 같아요”
“평소에 진짜 힘드시겠어요”
미용사가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에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사무직으로 치면 같은 일을 하는데 업무량이 두 배인 것일 테니 얼마나 끔찍할까. 나는 분명 정당한 돈을 주고 서비스를 받는 건데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점점 미용실과 멀어지게 됐던 것이다.
원장 디자이너는 꼼꼼한 손길로 커트를 시작했다. 머리 자르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원장님이라 그런가 영업 스킬도 남달랐다.
“볼륨 매직은 생각 없으시고요? 영양 추가도 괜찮으실까요?”
그는 강요 없이 그저 젠틀하게 나의 의사를 물었고, 나 또한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매직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연화제를 발라서 머리카락으로 치면 모공을 열어준다. 모발이 흐물흐물해지면 샴푸를 해 연화제를 닦아낸 다음, 고온의 매직기로 인정사정없이 펴준다. 가발 마냥 잘 세팅된 머리에 다시 중화제를 뿌린다. 머리카락의 모공을 다시 닫아주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샴푸를 하면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세 시간의 시술이 끝나고 나는 내가 요청했던 것보다 짧은 머리가 되었다. 하지만 머리 길이 따위 상관없다는 주의다. 머리는 계속 자라니까 길이 딱히 연연하진 않는다. 그저 귀밑 삼 센티미터 머리가 웃겨 카를로에게 셀카를 첨부해 ‘마틸다 머리가 되었다’고 소개했고,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최양락’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계산을 마친 나에게 원장은 최소 이틀은 샴푸로 감지 말라고 당부했다. 왠지 오래 안 감을수록 매직이 오래갈 것 같아서 48시간하고도 12시간 후에 감아볼 생각이다.
다시 미용실에 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2025年 5月 12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