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유감
정확히 중학생 때부터 다짐해 왔다. ‘생일과 밸렌타이데이를 구분해서 챙겨주는 남자를 만날 것’이라고.
내 생일은 이월 십이일, 밸렌타인데이와 불과 이틀 차이다. 이런 깜찍한 다짐을 했던 까닭은 생일을 매우 특별한 날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생일인 달만 다가와도 가슴이 두근박질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퀭한 눈으로 당장의 주말만 기다리는 신세지만 말이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서서히 조용하게 보내는 생일을 더 좋아하게 됐다. 2월은 늘 방학이었는데 내 생일을알릴 필요가 없어 특히 만족스러웠다. 친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도 숨길 수 있었고 또 안 친한 친구들의 반쯤 타의로 하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에 어색하게 답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카카오톡 생일 알람도 부러 숨겨놨다. 공적으로 내 번호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생일이란 걸 알리고 싶지 않다. 그저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소수 사람들의 축하로 충분하다. 케이크나 커피 기프티콘을 주고받으며 내가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싫다. 맞다. 실은 내가 계산적인 사람이라 그러하다. 스스로 졸렬해지기도 상대를 좀생이 만들기도 싫다.
이십여 년을 살아본 결과, 생일은 만 나이가 늘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단, 그뿐이다. 그저 출생 몇 년 차인지 카운트하는 기준일 뿐이다.
곧 만 스물여덟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다. 폐로 숨쉬기 시작한 지 어느덧 이십팔 년 차. 지겹도록 긴 듯하면서도 짧은 일 년을 스물여덟 번이나 반복 했다니. 평생 내 것일 것만 같았던 스물보다, 멀게만 느껴졌던 서른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서른이 되기 전에 뾰족한 하나를 이루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이룬 거라곤 회사 근속뿐이다.
나는 호랑이의 시간이라는 인시에 태어났으며, 마찬가지로 호랑이 기운이 강한 인월에 태어났다. 심지어 태몽도 호랑이였다.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허리를 다쳐 수술을 앞두고 있던 할아버지의 등을 새끼 백호가 핥아 주는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주가 뿜어내는 호랑이 기운이 무색하게도 나는 소심한 아기였다.
엄마는 진통을 꼬박 하루 동안 했다. 엄마는 끝까지 자연분만을 고집하며 진통을 견뎌냈는데, 그는 ‘신중하고 소심하며 생각 많은 나의 성격이 그때부터 드러난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진통을 시작하자마자 무 뽑듯 순풍 나온 동생과 달리 나는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늦게 나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힘차게 문을 박차고 나가 태어남을 선택해야 했던 그 순간, 세상에 나올까 말까 무척 고민하며 엄마를 괴롭혔다. 스물여덟 먹고 저녁 메뉴 선택을 고민하다가 남(카를로)에게 미뤄 버리는 내 모습을 보면 그 이론은 백 번 일리가 있다.
대체 내 사주에 가득한 호랑이 기운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통 영문을 모르겠다.
태어났던 날만 되면 나는 다시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간다.
탄생의 문 앞에서 망설이던 그때처럼 인생 앞에 머뭇댄다.
(2025年 6月 23日)
- 2월의 일기장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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