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맛
장 보러 시장에 갔다. 성수동 살 때는 3분만 걸으면 이마트였는데, 봉천동 집은 근처에 장 보러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도보 15분 거리에 시장이 있긴 하지만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안 가서 결국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시장을 들렀다.
일단 고기부터 샀다.
앞다릿살 한 근을 단돈 7,200원에 파는 정육점이 있는데, 여기는 발견하자마자 단골로 삼았다. 거기서 수육용 앞다릿살 한 근하고도 반을 세 덩이로 나누어 구매했다. 이렇게 잘게 썰어 놓으면 냉동실에 얼려 놓았다가 족발이나 보쌈 같은 배달음식이 먹고 싶을 때 꺼내어 끓여 먹기 좋다.
구이용 뒷다릿살도 한 근 반 샀다. 나는 이렇게 사도 5,900원밖에 안 하는 뒷다릿살을 좋아한다. 가격도 싸지만 지방이 앞다릿살보다 적어 식단 관리할 때 닭가슴살 대신 먹어도 좋다. 물론 닭가슴살보다 효과는 덜하겠지만, 맛이 좋아 식단 관리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7년 전 뒷다릿살을 소금간 없이 삶아 먹으면서 5kg을 감량한 적 있다. 이번에 산 까닭은 딱히 식단 관리 때문은 아니다. 정육점에서 산 신선한 뒷다리는 그냥 소금만 쳐서 구워 먹어도 담백하니 괜찮다.
다음 주에는 카레를 해 먹어야겠다. 부엌 싱크대에 떡볶이 만들 때 한 꼬집 정도 쓴 오뚜기 매운 카레 한 봉지가 돌아다니는데, 얼른 해먹고 치워버릴 요량으로 감자를 샀다. 내 주먹만 한 감자가 열댓 개 든 봉지에 단돈 3,000원이었다.
여름에 제맛인 오이도 샀다. 6개에 3,000원. 집에 있는 양파(겉이 약간 썩었음)와 토마토(엄마가 한 달 전에 줬던 대추 방울 토마토)를 썰고 양배추(산 지 한 달도 넘었음)를 잘게 썰어 볼에 넣고 올리브유, 레몬즙, 약간의 후추와 소금을 넣고 비벼 입안 가득 여름을 넣을 테다.
양배추는 마치 유통기한이 없는 것 같이 군다. 한 달이 지난 양배추라도 까맣게 변색된 부분만 썰어내면 멀쩡하다. 나는 일주일 까먹었다고 녹아버리는 양상추보다 4주 동안 까먹어도 씩씩하게 나를 기다리는 양배추 같은 친구가 더 좋다. 냉장고에 아직 4분의 1통이 남아있지만 그 친구가 썩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한 통 더 샀다. 머리통만 한 양배추가 단돈 3,500원이다.
생으로 아삭아삭 씹어 먹거나 쌈장에 찍어 먹으면 시원하니 좋다. 아니면 연한 잎을 골라 그릇에 물을 자박자박 깔고 올린 다음 전자레인지에 8분 정도 돌리면 야들한 양배추쌈이 된다. 심지 근처 억센 부분은 한입 크기로 잘라 굴소스나 간장을 넣고 살짝 볶거나, 제육볶음 같은 요리를 할 때 함께 넣어도 좋다.
양배추는 보관 기간도 길고 먹는 방법도 쉬워 아직 온전한 살림을 차리지 못한 자취생에게 훌륭한 혈당 킬러가 되어준다. 불닭 볶음면이나 떡볶이를 먹을 때 양심상 생양배추 몇 조각을 먹기도 한다. 그럼 신기하게 속이 덜 아픈 기분이다. 그러니 냉장고에. 양배추는. 늘. 있어야 한다.
현란한 꽃무늬 장바구니에 형태를 무시한 채 전부 욱여넣었다. 걸어서 집에 가기엔 허리에 무리가 갈 만큼 많이 사버렸다. 고작 정류장 2개 거리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서 끈적해진 몸을 미지근한 물과 뽀독한 비누로 씻고 대자로 누워있다가 홀린 듯 부엌으로 향했다.
일단 양배추를 썰었다.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ㅍ’ 모양으로 썰었다. 그러면 버리는 부분이 적어진다고 한다. 볶음용, 쌈용으로 나눠 밀폐용기에 담았다. 락앤락 4통이나 나왔는데 아직 썰지 못한 양배추가 한 덩이 남았다.
내일 아침에 콥 샐러드를 해 먹기 위해 오이를 들고 가시를 대충 감자칼로 없앴다. 그리고 식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잘게 썰었다. (하지만 칼질이 서툴러 엄지 손톱만하게 잘라 버렸다.) 토마토는 가위로 잘랐다. 양파는 물에 담가 아린 맛을 희석시킨 다음 잘랐다.
내친김에 감자도 손질했다. 수미감자라더니 확실히 부드러웠다. 어린 아이의 무릎 같았다. 흙을 씻어내고 껍질을 깎아냈다. 워낙 얇아 대강 깎았다. 먹어도 혀가 눈치 지 못할 것 같은 미세한 두께였다. 사실 두꺼운 껍질도 웬만하면 그냥 먹는다. 껍질에 영양가가 더 많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세 알은 전자레인지로 찌고 네 알은 내일 카레를 만들려고 한다.
작은 싱크대가 채소 쓰레기로 가득 찼다. 냉장고도 (대부분 양배추이긴 하지만) 가득 찼다.
물리적으로 냉장고를 채워 놓으면 다음 주도 버틸 힘이 생긴다.
차곡차곡 다시 다음 주를 준비한다.
(2025年 6月 29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