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점심에 냉동실에서 새우를 꺼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새우 백 마리가 만팔천 원으로 할인 판매하는 걸 보고 바로 구매했다.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사이즈이긴 하지만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레시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베트남에서 먹었던 갈릭 버터 구이다.
호이안 옥켄이라는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인데 버터 갈릭 칠리를 넣고 자작하게 졸인 국물에 조개나 새우를 넣어 만든 메뉴이다. 그냥 먹어도 짭짤하면서 크리미해서 맛있는데 거기다가 쫄깃한 반미를 찍어 먹으니 이성의 끈이 끊어질 정도로 맛있었다. 둘이서 반미 다섯 개를 해치워버렸다.
버터 세 조각을 넣은 프라이팬에 살짝 녹은 새우를 넣었다. 새우 꼬리가 빨개질 때쯤 다진 마늘을 크게 한 숟가락 넣었다. 그리고 우유를 한 바퀴 둘렀다. 치킨 스톡도 한 숟갈, 베트남에서 사 온 백후추도 넣어주었다. 국물이 살짝 졸아들었을 때쯤 수저로 맛을 봤다. 영락없이 짠 크림 파스타 맛이었다. 요리사로서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우유를 더 넣고 졸여볼 것인가, 아니면 파스타로 전향할 것인가.
재료를 더 쓰면서까지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프라이팬의 불을 끄고 면을 삶기 시작했다. 요리할 때 적절한 타협은 필수다. 전기 포트에 끓인 물을 냄비에 붓고 파스타 면도 반으로 갈라서 넣어 끓였다. 면이 팔십 퍼센트 정도 익었을 때 면을 건져 소스가 있던 프라이팬으로 옮겼다. 면수 한 국자도 넣는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맛있는 크림파스타가 되었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식사를 마치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동네 대형 카페로 가서 원고 작업을 할 계획이었다. 집 앞 전봇대에는 못 보던 플랜 카드가 붙어있었다. 우리 동네의 재개발 시공사로 선정된 모 건설사가 붙인 것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상투적인 인사 아래에는 “소유주분들께”라는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아, 나는 저들이 건넨 새해 복의 수신인이 아니구나.
어쩌다 보니 서울 재개발 지역에서 월세살이만 육 년 차다. 굳이 재개발 지역을 찾아다닌 것도 아닌데, 월세가 저렴하다 싶으면 늘 곧 수십 억대 대단지가 들어설 호재가 있는 곳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도배도 새로 해주지 않고 세입자를 받는다. 서글프지만 자본주의 세상은 슬플 명분도 주지 않는다. 아마 눈물 닦고 돈이나 벌라고 하겠지.
카페에 가서 산미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자리에 앉았다. 소유라는 단어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고양이도 있고 직업도 있고 적금 통장도 있지만 집은 없다. 늘 가진 것을 세며 사는데, 오늘은 왠지 없는 하나가 더 또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