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정수기로 향한다. 텀블러에 온수와 냉수를 절반씩 담은 다음, 보리차 티백 두 개를 탄다. 뚜껑을 꽉 닫고 화장실 변기로 가서 앉는다.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최신 뉴스를 보며 오늘의 전의를 다진다. 생업에 뛰어들기 전 치루는 나만의 아침 의식이다.
건성으로 페이지를 넘겨 보다가 여수 무인도에서 공룡 뼈가 발견됐다는 기사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침식 작용으로 중생대 지층에 묻혔던 공룡의 다리뼈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공룡의 뼈는 얼마나 튼튼하길래 몇 천 년 동안 남아 있을까 궁금해 하다가 자연스럽게 아빠 생각이 났다. 멸종된 생물의 다리뼈에서 그를 떠올린 까닭은 그의 허벅 다리 때문이다. 그의 암세포는 오장육부도 모자라 뼈까지 마수를 뻗쳤다. 아주 가벼운 충격에 그의 허벅지는 부러져 버렸고, 앙상한 다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나는 살거죽만 겨우 붙은 그의 다리를 바라보며 아이돌들을 실제로 보면 이만큼 말랐겠지 하고 생각했다. 안마를 위해 주무르는 것 조차 조심해야 할 만큼 비현실적으로 야윈 모습. 왕년에 까맣고 탄탄한 피부에 큼직한 이목구비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던 아빠는 피골만 남아 있었다. 백팔십 센티미터로 훤칠했던 그는 어느새 내 몸무게보다도 가벼웠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화장한다. 소각로에 몸을 넣고 천 도 가까이 되는 온도로 태워 뼈만 남긴 다음, 뼛조각들을 모아 분골기에 넣어 고운 가루 형태로 만든다. 이를 유골함에 넣은 다음 안치한다. 일이십 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화장터에 들어간 아빠는 좀처럼 돌아올 생각을 안했다.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긴 작업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 직원은 고인의 생전 무게에 따라 소각이 완료되는 시간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가벼울수록 재가 되어 돌아오는 속도가 빠르다는 그 무심한 안내를 들으며 아빠의 생전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성별에 따라 더 견고한 골격 부위가 타지 않고 남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여자는 골반뼈, 남자는 어깨뼈였다. 만약 아빠를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땅에 묻었다면 수천 년 뒤 후손들이 공룡 화석을 발견하듯 아빠의 온전한 어깨뼈를 발견하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장이 끝나니 유골함을 골라야 했다. 그가 흙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생분해되는 유골함을 골랐다. 그리고 갓 화장한 아빠를 담았다. 유골함은 상상과 달리 따뜻했다. 차갑고 비통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뜨거운 유골함은 아직 생이 이어지는 듯한 착각을 줬다. 이 따스함이 마치 그의 마지막 온기 같아서 외투로 유골함을 감싸안았다. 빈틈 없이 안으면 식지 않을 것만 같아서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꼭 껴안았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를 크게 틀고 양평으로 향했다. 뜨거웠던 유골함은 점점 따뜻해졌고, 미지근해졌다가 이내 차가워졌다. 내내 살아있던 아빠가 이제서야 죽었다고 받아들여졌다. 아빠 허벅다리에 박혀있던 철심은 어디로 갔을까, 이빨에 박혀있던 임플란트는 어디로 갔을까. 아빠를 돕던 보형물들은 다 어디로 가고, 고운 분진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 그런 고철 덩어리 따위 필요 없는 세상으로 가게 됐다니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그가 가장 그다운 모습으로 진정한 해방을 맞이했기를 바랐다.
공룡 뼈 외에도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짬뽕 아이폰 오메기떡 미니쿠퍼 캡슐커피머신 텐트 SUV 슈나우저 낚시 라면 소주 맥주 탈모 강원도 귀농 썰매 에쎄 도봉동 디카 식목일. 부로 그와 멀리 떨어진 단초에 아빠를 갖다 붙인다. 어쩌면 의식적으로 떠올린다. 그를 떠올리게 하는 먼지만큼 작은 추억들이 고운 가루처럼 흩어지지 않도록 한 올씩 모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