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빨간 색 물건을 챙겨 다녀라.”
수화기 너머 할머니의 첫마디는 단호했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올해 내가 삼재라며 늘 빨간색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자주 입던 팬티를 택배로 보내라는 명령까지 내려졌다. 절에서 태워서 액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몇 번을 못 들은 척 넘겨봤지만, 할머니는 굴하지 않고 통화할 때마다 팬티를 내놓으라고 재촉했다. 하는 수 없이 택배로 보낼 팬티를 골라야 했다. 할머니는 효능을 보려면 자주 입던 팬티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지만, 타인에게 속옷을 보인다는 사실은 차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나마 새것 같은 컨디션의 팬티로 타협했다. 잘 입게 되지 않는 엄한 핫 핑크색 팬티였다.
얼마 뒤 절에서 팬티를 무사히 태웠다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 할머니가 다니는 절은 빌라에 차려 놓은 절 같은 공간인데, 정식 사찰인지, 아니면 불법 종교 시설인지 뭐라 정의하기 애매하지만 할머니에게만큼은 가장 영험한 절이다) 팬티를 태운 덕분일까, 별 탈 없이 삼재를 보냈다.
환순 씨는 가끔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지령을 내린다. 닭띠 남자를 만나라. 엄마랑 자주 봐라. 사촌 동생들과 사이좋게 보내라.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여자는 술 마시는 거 아니다. 그러면 나는 지키지 않을 거면서 "네네" 하고 대답한다. 내가 잘되길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만 받는다.
무탈함을 만든 것이 할머니의 마음인지, 불법(으로 추정되는) 종교 시설의 주술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나는 할머니의 염원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믿는다. 팬티를 태웠든 브라를 태웠든 양말을 태웠든 머리카락을 태웠든 아무것도 태우지 않았든 나는 무탈했을 것이다. 나의 안녕을 이토록 간절히 바라는 할머니가 있었으니 말이다.
삼재 때 나를 위해 팬티를 태워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부적보다 강한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