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립밤을 바르고 자는 습관이 있다. 언뜻 보면 바세린 같이 생긴 단지형 립밤인데, 믿을지 모르겠으나 이 립밤 하나를 삼 년 가까이 사용했다. 거의 딱풀 수준의 끈덕한 질감에다가 밤에만 조금씩 바르다 보니 이렇게나 오래 썼다.
이걸 언제 다 쓰지. 매일 같이 생각했다. 그래도 각질 제거 기능 하나는 끝내줬기에 질리지 않고 사계절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쓸 수 있었다. 풀처럼 입술에 아주 착 달라붙는 게 맘에 든다.
사용한 지 이 년 육 개월쯤 됐을 때 바닥면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립밤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3년 전 이 립밤을 원플러스원으로 샀던 터라 다시 똑같은 립밤을 발라야 한다.
나는 텅 빈 갈색 단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뚜껑 가득차 있던 립밤을 서서히 다 써버린 것이 영원할 것 같아 감히 지겹다고 느끼던 젊음이 소진되는 과정과 닮았다고 말이다.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 가랑비에 옷 젖듯 시나브로 나도 모르게 하루씩 나이들고 병들고 성숙해지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새삼스레 매일이 인생을 만든다는 사실을 실감했을 뿐.
얼마 전 일본식 꼬칫집에서 열린 본부 회식에서 전무님은 "미국 S&P 200을 적립식으로 구매하면 시간을 레버리지 삼아 아주 안정적이면서도 막대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집에 돌아가 술 기운을 떨친 다음 매주 13만 원씩 적립 매수 주문을 걸어놓고 잠들었다. 미래에 반드시 돌아올 행운을 위해 오늘 어떤 반복된 행동을 하는 것. 정말 어른스럽다.
나의 요즘 또하나의 습관은 까미에게 간식주기다. 까미에게 밤마다 이빨에 좋은 미국산 이빨 과자(나름 고급)를 준다. 잇몸에 좋은 성분으로 만들었으며 단단한 질감이라 씹으면서 치석제거가 된다는 제품이다. 이 과자를 침대맡에 놓인 네모난 스크래처에 여덟 알 정도 뿌려주면 까미는 부리나케 좇아와 과자를 먹는다. 재밌는 점은 이제 이게 까미의 습관이 되어서 과자 상자만 흔들어도 까미가 스크래처 위로 앉는다는 것이다. 나는 괜히 “까미, 하우스.”라고 짐짓 진지하게 외치며 박스를 흔든다. 그럼 까미는 스크래처로 달려온다. 날마다 반복하니 제멋대로 사는 고양이에게도 개인기가 생겼다.
아주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그게 삶이라는 생각을 요새 부쩍 많이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반복하며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