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오후 출근하는 월요일이었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지만 한 시간 정도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호사를 누렸다. 누워서 뉴스도 보고 고양이도 보고 주식 창도 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밥을 안쳤다. 냄비에 차돌박이와 배추를 넣고 조미료 가루와 액젓을 뿌려 배추찜을 만들었다. 냉장고에 곰팡이 핀 시금치를 버리면서 칸칸이 청소도 싹 했다. 괜히 무언가 많이 한 기분이 들어서 소파에 벌렁 누웠다.
볕이 좋아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더니 밖에 소리가 모조리 나의 작은 안방으로 들어왔다. 유독 트럭에서 하는 방송 소리가 시끄러웠다. 자세히 들어보니 지금 관악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달 치 쓰레기 봉투를 나눠주고 있으니 ㅇㅇ아파트 앞으로 나오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청에서 제공하는 복지라면 왜 미리 문자나 현수막으로 생색내지 않았을까 의아하긴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트럭이 안내한 아파트 정문으로 향했다.
그곳엔 듬성듬성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나를 포함한 세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나이에 비해 피부가 유달리 하얀 파란 카라티 차림의 중년 남성은 본인을 완도 농산물 협회 마케팅 담당자라고 밝혔다. 자신들이 7월에 참여할 판매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 왔을 뿐이라며 선물 네 개와 함께 쓰레기 봉투를 받아 가면 된다고 일렀다.
열두어 명정도 되는 사람들과 함께 트럭으로 향했다. 어느새 트럭은 어두컴컴한 판매장이 되어 있었다. 파란 카라티 남자는 자신의 목적은 정말 오로지 완도 농산물의 홍보에 있으며 이 자리는 제품을 퍼주기 위해 왔다며 자신의 무구함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고는 정말 미역을 한 봉지씩 나눠줬다. 그다음 선물은 주걱이었다. 그냥 주걱은 아니었다. 야채와 함께 보관하면 신선함이 더 오래 간다는. 옥 주걱. 이었다.
이때부터 깨달았다. 아, 이거 옥장판이었구나. 나는 옥 주걱 전까지만 해도 정말 이들이 잔뜩 쌓인 농산물을 팔기 위해 투박하게 홍보하는 무구한 상인일 거란 생각을 했다. 파란 카라티 남성은 트럭이 잘 보이지 않도록 대나무 발을 치며 슬슬 본색을 드러냈다. 천마 파스와 천마 가루로 이어지는 일명 천마 라인을 꺼내 보인 다음 세 치 혀를 놀리며 청중을 휘어잡았다.
“자~ 여기 허리 아프신 분들 손들어보세요. 이게 일반 파스랑은 달라요. 정말 귀한 거예요. 이게 원래 한 봉지에 만 원인데 오늘만 그냥 드립니다. 써보시고 좋으면 사세요. 절대 강요하는 거 아닙니다. 좋다 하면 전화 주세요.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천마 가루 좋으신 건 다들 아시죠? 아이 대답 소리가 너무 작다. 아시죠? 이거 건강해지려면 한 달에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아세요? 최소 삼십 킬로는 먹어야 효과가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학교 수업을 듣는 것처럼 열심히 대답했다. 그리고 남자는 천마 가루는 제대로 먹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특별히 동영상을 준비했다며 트럭에서 티브이를 꺼냈다. 이쯤에서 나는 자리를 피했다. 쓰레기 봉투를 받을 생각은 진작에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이런 식으로 동영상을 다 보여준 뒤 ‘오늘만 천마를 하나 가격에 두 개를 주겠다’, ‘맘에 들지 않으면 환불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강매한 다음 실제 환불은 절대 불가능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런 원시적인 형태의 사기를 목격한 것이 좀 신기했다. 내가 외로웠다면 속을 수도 있었겠다. 떠올려보니 혼자 살았던 나의 친할머니댁에는 어딜 가든 육각형 모양의 옥이 있었다. 쌀통 안에도 장롱 안에도 심지어 물병 안에도. 할머니도 이런 경로로 옥을 얻은 걸까.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엄마가 초보 운전자이던 시절, 갑자기 앞 트럭이 급정거했다. 그러더니 운전자가 갑자기 창가로 와 ‘너무 죄송하다, 실은 트럭으로 옥돔을 팔고 있는데 죄송하니까 큰 생선을 싸게 드리겠다’고 유인했다. 생선 이름은 왜 또 ‘옥’돔인지. 순진했던 엄마는 트럭을 따라 아파트 단지에 차를 세운 다음 옥돔 한 박스를 구매했다. 그러나 막판에 바꿔치기 당한 건지 식탁에 오른 것은 살이 거의 없는 상품성 없는 생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까 나도 모르게 잠입 취재자라도 된 듯 트럭 안의 풍경과 차량 번호를 촬영했다. 아마 내 여자들에게 있었던 옥에 얽힌 사기의 기억 때문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