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된다.
알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을 목도할 때면 핸드폰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 집 고양이 봉식이와 까미가 서로를 핥아주는 모습을 발견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카메라 앱을 실행시킨다. 그다음 마구잡이로 셔터를 누른다. 찍는 동안 나의 눈은 그루밍 장면이 아닌 휴대폰 액정을 향한다. 진짜를 앞에 두고 가짜를 보고 있는 것이다. 순간 까미의 하악질로 이 장면은 금방 끝난다. 사진으로라도 남겼으면 몰라. 급하게 찍은 사진이 잘 나올 리 없다. 흔들리거나 초점이 나가있다. 나에게 사진을 담는 동시에 마음에 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여행 유튜버가 되지 못하는 수백 가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히려 기록하지 못한 덕에 마음에 새겨진 찰나의 순간이 있다. 바야흐로 아빠가 성모병원에 외래진료를 받던 시절이다. 당시 병원 보호자 역할은 휴학생이던 동생의 몫이었는데, 항암 치료를 마친 김에 셋이 같이 점심을 함께했다. 메뉴 선택을 맡은 나는 오전 반차를 내고 근처 백반집으로 그들을 불렀다. 아빠가 병원밥 대신 집밥을 먹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불고기를 먹었다. 평범함 그 자체였다. 더 좋은 걸 먹으러 갈걸 호텔 뷔페라도 갈걸 아직까지도 후회막심이다. 다행히 콘크리트 감성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맛있었다.
카페모카를 다 마신 그는 강원도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나를 회사에 내려주기로 했다. 벤츠 엔진을 달아 아빠의 자랑이었던 구식 국산차였다. 왕복 10차선이 넘는 복잡한 강남 도로였기 때문에 나는 재빠르게 내린 뒤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까맣게 선팅된 창문 안에서 아빠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나에게 바랄 것 없다는 듯이 사랑 가득한 웃음이었다. 이 순간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는 예감을 느낀 나는 재빨리 주머니로 손을 넣었지만, 아빠 차는 이미 떠나버린 뒤였다. 카메라에 담지 못했지만 그 장면은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어이없는 사실은 그날 4초 정차한 것으로 인해 벌금 딱지가 날아왔다는 것이다.
빠이에서 만난 곱슬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모로코 친구는 내게 손으로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줬다. 두 손의 중지와 검지를 샵 모양으로 모은 다음 벌렸다가 오므린다. 그럼 필름 카메라 뷰파인더처럼 사진을 찍는 모양새가 된다. 나는 이 손카메라에 큰 감명을 받았는데, 모로코 친구는 실은 자신이 모로코에서 건물 부자라며 점점 치근덕 대기 시작했다. 자기 숙소로 같이 가자는 검은 속내를 내비치자마자 나는 바로 그와 멀어지기를 택했다. 비록 사람을 얻진 못했지만 이 손카메라는 얻었다. 손카메라는 정말 행복할 때만 꺼낸다. 지금 이 순간을 정말 오래도록 기억하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두 손가락을 포갠다.
모든 것을 사진을 남겨 기억하겠다는 마음은 슬프다. 4만 장이 넘는 나의 휴대폰 사진첩이 그러하다. 258기가바이트짜리 저장용량은 사진과 비디오로 꽉 차는데, 그럼 나는 휴대폰을 정리하는 것보다 새 휴대폰으로 바꾸는 것을 택한다. 많이 찍어놓고 정리도 하지 않는 파렴치가 따로 없다.
필름카메라 세대인 엄마는 사진을 찍어줄 때 늘 고심해서 한 컷 찍어준다. 여행을 가도 세 장이 최대다. 항상 이게 뭐냐고 많이 좀 찍어달라고 타박해도 장수가 늘어나진 않는다. 어쩌면 사진으로 이 순간을 남기겠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생각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