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 모녀가 각자의 집을 갖게 된 역사적인 날이다. 나야 애진작부터 자취 생활 중이지만 수입이 들쑥날쑥한 프리랜서 동생은 캥거루처럼 엄마와 살았다. 그러다 예술인을 위해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공유하우스에 살게 된 것이다.
엄마와 동생은 달뜬 목소리로 내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중랑천 앞 벤치였다. 오늘 둘이서 셀프 입주 청소를 마치고 기본적인 세간살이를 들여온 모양이었다.
이십 년간 함께 살던 우리가 이제는 각자 집세를 내며 다른 동네에 산다. 문만 벌컥 열어 볼 수 있던 반가운 얼굴은 이제 없다. 셋이 시간을 맞춰 겨우 몇 시간 보는 게 전부일 테다. 그것도 많으면 한 달에 두어 번쯤.
언젠가 집을 사고 싶다. 재테크 수단도 좋겠지만 가족들과 널찍하게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서울에선 안 될 것 같은데 어쩐담…. 창가에서 늦봄의 서늘한 바람이 한 가닥 불었다.
한 몸처럼 붙어살았던 우리는 이제서야 각자의 문법을 만든다. 나는 계란 후라이를 차가운 물에 헹궈 먹고 이불은 대충 통돌이 세탁기에 돌려 빤 뒤, 걸레질보다는 빗자루질을 더 많이 하며 살 것이다. 동생은 아마 창가에 화분 최소 다섯 개는 올린 다음 체중 관리를 위해 텅 빈 냉장고를 유지하며 살 것이다. 엄마는 높은 확률로 열무김치 배추김치 갓김치 양배추김치 계절에 맞는 김치를 담가 부지런히 딸들 집에 가져다 나를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스텝퍼로 저강도 운동을 찌끄릴 거다.
같은 문법으로 말했던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언어로 각자의 집을 채워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