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불을 꺼놓은 방 안에 누워 텔레비전을 틀어 놓곤 했다. 이를테면 1박 2일 같은 예능 프로를 틀어 놓아서 쉴 새 없이 시끄러운 효과음과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가 적막한 방을 채우면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들끼리만 재밌지. 뭐가 재미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채널을 바꾸는 일은 없었다. 할머니는 소란한 소음을 자장가 삼아, 언제나처럼 한쪽 팔을 괸 채 까무룩 잠이 들었다.
포천에 살아 포천 할머니가 된 할머니. 잘생겼지만 가장 역할을 하지 못한 남편이 먼저 떠난 뒤, 혼자 남은 할머니의 적적한 집으로 나와 동생은 종종 파견되곤 했다. 그럼 할머니는 멸치 육수를 진하게 낸 된장찌개를 끓여 두었다. 현관문 밖까지 구수한 된장 냄새와 밥 냄새가 흘러나왔다. 나는 아직까지 이것보다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다. 밥그릇에 코를 박고 먹는 우리를 보며 할머니는 늘 이 말을 덧붙였다.
“된장 말고는 아무것도 넣은 거 없어.”
호박 멸치 두부. 사실 된장 말고도 든 게 많았지만 할머니 말을 믿었다.
된장찌개는 다음에 또 할머니 집에 오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할머니는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다음에 된장 또 찌져줄게”하며 손을 조물거렸다.
찌개를 찌졌다라고 표현하는 건 할머니의 전매특허 말투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가난을 피해 일본 삿포로에서 지냈는데, 일본 학교에 다닐 때 순사가 늘 “조센징 시까따나이”라며 혀를 찼다는 이야기를 수백 번도 넘게 들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묵은 오뎅, 튀김은 덴뿌라, 양파는 다마네기라고 불렀다. 그의 삶엔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묻어있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소란스러운 예능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지들끼리 신났네’ 같은 말을 뱉었다. 아차 싶었다. 불평하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의 불평은 사실 일종의 소외감이었을 테다. 웃음소리는 들리는데, 그 웃음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기분.